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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머나먼 타국, 뉴질랜드에서의 28일
2014. 09.03(수) 09:46

신의초등학교 전경
콩닥콩닥 기다리던 7월 25일, 바로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날이다. 28일 동안 부모님 품을 떠나 뉴질랜드로 나 홀로 어학연수를 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를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도 들었고 멋진 뉴질랜드의 풍경들과 그 곳의 생활이 정말 기대되었다.

11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7월 26일 토요일 이른 아침 뉴질랜드에 도착하였다. 까다로운 입국심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보니 어학연수를 도와주실 김의동 사장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우리가 다니게 될‘Elmpark School’이라는 현지 초등학교에 도착해 최승이 선생님과 ‘Elmpark School’의 Mrs Plowright 교장선생님, 도서관 사서선생님이신 Mrs Katherine 과의 첫 만남을 가진 후 교복을 받았다. 우리는 중학교부터 교복을 입는데 이곳은 초등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어서 뭔가 색달랐고 처음 입어보는 교복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최승이 선생님은 홈스테이를 하면서 주의할 점과 학교생활을 하면서 주의할 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홈스테이는 2인 1조로 배정되었는데 나와 짝이 된 아이는 은지였다.

하나 둘 홈스테이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드디어 내 이름과 은지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러자 바로 홈스테이 가정의 엄마와 그레이스 언니, 귀여운 동생 헤나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 왔다. 함께 차를 타고 홈스테이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우리가 지낼 방을 알려주신 후 과자와 따뜻한 코코아, 마시멜로우를 주면서 졸리지는 않냐, 씻고 싶지는 않냐, 비행기는 몇 시간이나 탔느냐, 배가 고프지 않느냐 등 여러 가지를 물어 보며 우리를 걱정해주었다. 우리는 짐을 대충 두고 헤나와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하며 놀았다. 헤나는 뉴질랜드 나이로 10살이었지만 6th Grade라고 하였다.

나보다 3살이나 어린데 같은 학년이라 깜짝 놀랐지만 우리나라와 외국의 나이 계산법이 다르고 헤나가 빨리 학교에 입학하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과 주말을 보내고 학교를 가는 월요일이 되었다. 나와 은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마오리 전통의 노래와 춤으로 Elmpark School의 학생들이 우릴 환영해 주었고, 작고 귀여운 모습의 학생회장 Michael의 환영의 말과 선생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다.

반을 배정 받았는데, 나는 Room 19에 배정을 받았다. Room 19에서 항상 신나게 웃고 재미있게 떠들며 즐거운 날을 보낼거라 기대했지만 그 생각은 얼마 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얼마 후에 두 학생이 나와 은지를 심하게 놀린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 서러워서 펑펑 울어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 반 Mrs Taljaard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운동을 좋아 하는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등 많은 질문을 하시고 보여주시면서 나와 반 친구들이 친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K-pop가수 Exo를 Youtube를 통해 소개시켜 주었더니 반 학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반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Mrs Taljaard 선생님은 합창반을 지도하셨는데 나와 은지가 함께 구경을 갔었다. 어떤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치 유명한 합창단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멋진 합창이었다. 뉴질랜드의 전통부족인 마오리 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Elmpark School에서는 마오리족 춤과 노래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중 전사의 춤을 봤는데 학생들이 정말 멋지고 재밌게 잘했다. 우리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 반의 Quinton이라는 남학생이 우리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나도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어학연수를 간 우리 신안군 친구들은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을 보러 다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뉴질랜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특이한 자연환경이나 건물들이 아니라 바로 뉴질랜드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였다. 우리나라는 발전을 위해 산을 깍거나 터널을 많이 짓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자연파괴를 최소화해 길도 구불구불하고 다리도 차가 1대만 지나갈 수 있도록 좁은 구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점이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어찌 보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문화를 엿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소와 양, 염소가 엄청나게 많았다. 강이나 호수에는 배(Boat)가 많았는데 안내해주시는 최승이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뉴질랜드 인구보다도 훨씬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주말에는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 갔다. 마트 이름이 카운트다운이라는 곳이었는데 목포에서 갔었던 마트들보다 훨씬 크고 높았다. 그곳에서 홈스테이 엄마와 우리는 피자재료와 먹을 것들을 샀는데 그 곳에서는 물건들이 높은 곳까지 진열되어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꺼내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마트에서는 여러 가지 제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해 놓는데 반해 이 곳의 마트에서는 한 가지 제품을 엄청나게 쌓아두고 팔고 있었다. 물론 마트가 워낙 커서 다양한 제품들도 많았지만 한 가지 제품의 수량이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재료를 모두 산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피자를 만들었다. 엄마표 특제 소스를 도우에 바르고 치즈와 토핑재료들을 뿌리고 오븐에 넣었다가 빼니 맛있는 피자가 완성되었다. 헤나와 나, 그레이스 언니와 은지, 그리고 엄마 아빠는 마치 처음부터 한 가족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에 있는 엄마가 많이 생각났지만 그럴 때마다 뉴질랜드의 홈스테이 엄마가 잘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시간이 가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뉴질랜드에서의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학교에서 수료식을 하는데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반 친구들이 울지 말라며 달래주고 다른 반 아이들과 심지어 내가 모르는 아이들도 와 울지 말라며 걱정을 해주는데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반 친구 몇 명이 이메일 주소를 주면서 연락하라고 주는데 그것 때문에 더 울었던 것 같다.

우리가 힘들어 어리광을 부릴 때 마다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마지막 날 영어공부하다 힘들면 연락하라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20명이나 되는 학생에게 일일이 손 편지까지 써서 보내준 최승이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또 미니골프를 하는 날 점심으로 피자를 사주셨던 김의동 사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약 3주 반 동안 우리를 인솔하면서 힘드셨을 서경진 선생님과 김지영 선생님, 또 lmpark School의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 홈스테이 가족 분들 모두가 잊지 못한 소중한 기억이다.

이 기회를 통해 신안군의 인재육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고길호 신안 군수님과 교육복지과 관계자 분들과 우리가 뉴질랜드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신의초등학교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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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3(목)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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