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자발성: 질문이 생기도록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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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어떤배움의 태도를 요구했을까? 다음구절에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논어 ‘술이’ (述而)편 여덟 번째 구절이다.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子曰不憤不啓, 不?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배우려는 자가) 조급해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주되, 나머지 세 귀퉁이를 같이 맞들지 못하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학교에 이 구절을적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두가고개를 저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시작해 ‘의무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의무’ 로 다녀야 하는 그학교에서는 국가에서 지정한 교육과정을 빼곡하게 배치하고,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친다.그것도 모자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밤 10시가 너머까지 학원으로조리돌림을 시키는 듯하다.
의무교육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아니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에 대한 질문이 생길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왜 뭔가를 알고 싶어서 안달해야 하나? 이미 주변에는 지식으로 차고 넘치는 데 말이다.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제과점에서배가 고프지도 않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먹이려고 하니, 아이들은 먹는 것의 즐거움은 고사하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데 말이다.
공자는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배울준비가 되어 찾아오면, 그제서 한마디 툭 던졌을까?
앞에서 언급한 논어 ‘술이’ (述而)편 구절의 행간을 살펴보면, 그런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자의 제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오거나, 뭔가를
배워서 관료 나부랭이나 되겠다고 찾아온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누구라도 최소한의 예(禮)만 갖추면 아무 제한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그들을 교육했다. 제자들이 자기자신에 대해 궁금하도록,그리고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비로소 제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도 상황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상황은 언제나 똑같다.무언가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자신과 세계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배움에 목마르도록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우선, 교사 개개인의 교육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교사는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 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식은 이미 널려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에 질문이 생기도록 만드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내가 겪은 대부분의 선생들처럼 아이들 안에서 생긴 질문마저 뭉개버리는 교사도있다. 그들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두 번째는 제도와 틀을 바꾸는것이다. 혁신학교라는 소중한 실험 속에서 무언가 바뀔 수 있음을이미 확인하고 있다. 아직도 강고하지만, 우리 교육체제도 파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이 실험을 이어가서 정말 교육을바꿔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다. 교사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노력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교사가 스스로 이를 점검해 보고, 아이들 앞에 설 일이다. 아이들은 안다. 교사가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교사가 스스로의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은 교사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다.
지혜학교 교사 장동식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子曰不憤不啓, 不?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배우려는 자가) 조급해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주되, 나머지 세 귀퉁이를 같이 맞들지 못하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학교에 이 구절을적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두가고개를 저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시작해 ‘의무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의무’ 로 다녀야 하는 그학교에서는 국가에서 지정한 교육과정을 빼곡하게 배치하고,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친다.그것도 모자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밤 10시가 너머까지 학원으로조리돌림을 시키는 듯하다.
의무교육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아니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에 대한 질문이 생길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왜 뭔가를 알고 싶어서 안달해야 하나? 이미 주변에는 지식으로 차고 넘치는 데 말이다.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제과점에서배가 고프지도 않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먹이려고 하니, 아이들은 먹는 것의 즐거움은 고사하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데 말이다.
공자는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배울준비가 되어 찾아오면, 그제서 한마디 툭 던졌을까?
앞에서 언급한 논어 ‘술이’ (述而)편 구절의 행간을 살펴보면, 그런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자의 제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오거나, 뭔가를
배워서 관료 나부랭이나 되겠다고 찾아온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누구라도 최소한의 예(禮)만 갖추면 아무 제한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그들을 교육했다. 제자들이 자기자신에 대해 궁금하도록,그리고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비로소 제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도 상황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상황은 언제나 똑같다.무언가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자신과 세계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배움에 목마르도록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우선, 교사 개개인의 교육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교사는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 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식은 이미 널려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에 질문이 생기도록 만드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내가 겪은 대부분의 선생들처럼 아이들 안에서 생긴 질문마저 뭉개버리는 교사도있다. 그들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두 번째는 제도와 틀을 바꾸는것이다. 혁신학교라는 소중한 실험 속에서 무언가 바뀔 수 있음을이미 확인하고 있다. 아직도 강고하지만, 우리 교육체제도 파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이 실험을 이어가서 정말 교육을바꿔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다. 교사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노력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교사가 스스로 이를 점검해 보고, 아이들 앞에 설 일이다. 아이들은 안다. 교사가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교사가 스스로의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은 교사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다.
지혜학교 교사 장동식
































2026.10.20(화) 1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