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떠나시는 교육국장님께
2014. 09.16(화) 08:58
1990년 여름, 예비역 대학 4학년 시절 극장에서 눈물을 훔쳐가며 봤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다시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사범대학 졸업준비생이던 나에게 그 영화 속 캡틴, 키팅 선생은 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아닌 진짜 키팅 선생이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2014년 8월,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많은 7080세대들은 <피터팬>이 떠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014년 8월, 나의 또 다른 키팅 선생 한 분이 내 곁을 떠나려고 한다. 김선홍 교육국장님.

9월 1일부터는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불리울텐데… 나에게는 영원한 광양교육장님이자 교육국장님이다. 그래서 그 분은 나에게 ‘오 캡틴! 마이 캡틴!’이다. 내가 모신 교육장, 교육국장이라서가 아니다. 2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전문직원(장학사)으로 만난 그 분은 나에게 진정한 교육자이자 인간 선배로서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20년 교사운동의 이력을 가진 나에게 진정한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외벌이 당신은 근무 시간 이후 기관장이나 단체장, 그리고 지역 유지들과 만나는 자리의 식대(食代)를 개인카드로 계산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관용차를 운전하던 주무관이 슬며시 들려준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장학사님, 교육장님께서 쓰시는 카드가 마이너스 계좌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교장 승진을 희망하는 관내 초?중학교 교감들이 명절이 가까워지면 교육장님 댁으로 선물꾸러미를 보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부임 직후, 관내 교감 연수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선언-“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적인 인사(人事)를 통해 다른 사람보다 좋은 평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불이익을 당할 줄 아시오.” -을 실천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관내 기관장이나 단체장들에게 교육장의 위상을 권위로 세우는 게 아니라,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분. 1년 6개월을 모셨던 그 분은 나에게 정말 큰 스승이자, 선배님이었다. 한 번은 2011년과 2012년 전국소년체전에서 역대 최고 성적(금 10개)을 거둔 공로로 국외연수를 가게 되었다.

같은 직장에서 국외연수 대상자에게 여행경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건네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급직 직원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따, 또 봉투 만들어야 쓰겄네.” 나 또한 그런 관행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나에게 찾아왔고 어김없이 봉투들이 모여들었다. 과분한 금액들이었다.

출발하던 날, 다른 직원을 통해 감사의 글과 함께 정중히 돌려드릴 것을 당부하고 국외연수를 떠났다. 그렇게 하고 가면 홀가분할 거라 생각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귀국이 임박하자 직원들에게 건네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귀국 후 출근한 첫날, 교육장님께서는 관용차 운전 주무관을 휴가 보내고 나더러 관내 교외생활지도구역을 한 바퀴 돌아보자했다. 격려 방문을 하고 귀청하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교육장님께 선물을 내밀었다. 교육장님께서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 선물 내가 받기를 원하는가?”고 물었다. 얼른 “네!”라고 답하자, “그럼, 이걸 들고 교육장실로 올라오시게”라고 하셨다.

교육장님은 책상 서랍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그리곤 “자네가 좋은 일을 했네. 동료나 아랫사람들의 봉투를 돌려준 것은 의미있는 행동이었네. 그런데 윗사람의 봉투는 받는 게 예의라네. 이 봉투를 받으면 내가 그 선물을 받음세.”

교육장님의 봉투 겉면에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러하였듯이 당부의 글도 있었다. “수고하셨네. 이곳 일은 모두 잊고 편하고 즐거운 여행되시게”라고 말이다. 그 봉투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어리광도 부렸다. 전문직 첫해 여름, 다시 교사로 돌아가고 싶어서 전직(轉職)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봄, 도교육청에 와서도 똑 같은 말씀을 드렸다. 두 번 모두 “조금만 더 참고 해보시게. 이곳에서도 자네가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네”가 당신의 말씀이었다. 이제 당신은 시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었다. 당신의 모습에서 내가 했던 그 어리광의 모습을 읽는다. 유홍준 교수는「완당평전」에서 추사가 마지막 남긴 글씨체가 아이처럼 서툴기만 한 것은 “결국 최고의 경지야말로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아직 어리광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감성 가운데 가장 맑은 기운이 남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슬프다. 당신의 선택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한다는 걸 내가 당신의 세월만큼 시간을 보낸 뒤에야 발견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다시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당신에게 이별을 하는 순간에서야 고백한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당신은 적어도 나에게는 스승이고 멘토였으며, 사람 냄새가 끊이지 않는 선배였다고 말이다. 하여 나는 오늘 당신을 이렇게 부른다.

“오 캡틴! 마이 캡틴!”

학생생활지원과 장학사 백도현
이 기사는 전라교육신문 홈페이지(http://www.jled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cch858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