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억속의 '천사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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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취학통지서가 의무적으로 각 가정에 통보 되지 않았다.
적정나이가 되면 으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반 아이들 중에는 몸집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뒤뚱거리며 다니던 예닐곱 살 친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 역시 한 살 많은 동네 친구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가버리자 엄마를 졸라 1학년 2학기가 시작될무렵에 뒷문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밤낮으로 보채는 통에부모님도 ‘며칠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후 학교를 보냈단다. 남들보다몇 달 늦게 입학한 기자는 학교생활이 정말 재미있었다.
며칠 동안 잘 따라다녔고, 생애 처음으로 시험도치렀다. “첫 시험에 만점을 받으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 후 기자의 초등학교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또래보다 약하고 체구가 작았던 탓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결국 학교에 다닌 지 몇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교육열이 강했던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교문까지 책가방을 들어주며 엄한 얼굴로 학교에 보냈는데, 그 때 만났던 인자하신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연필 쥐는 방법부터 글씨 쓰는 방법까지 모든 걸어깨너머로 배워서 흉내만 냈던 기자에게 선생님은 옆자리에 책상까지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올바르게 연필을 쥐는 방법부터 한글의 획을 긋는 순서까지 매일 세심하게 알려주셨던 천사표 선생님. 당시엔 올바른 연필 쥐기와 바른 글씨쓰기는 1학년 학생들 사이에 커다란 숙제이자 고통이었다.
받아쓰기 시험이 시작되더라도 선생님은 옆에 서서 연필 쥐는 방법과 글씨 쓰는 방법을 계속해서 수정해 주셨다. 덕분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반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어린이, 가장 자세가좋은 학생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또 몸이 아파서 자주 엎드려 있었는데, 그 때마다마치 엄마처럼 업어주셨던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많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그 때만큼 인자하고 자상했던 분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처럼, 때론 언니처럼 다정다감했던 친구 같은선생님. 성인이 되어 한번쯤 찾아뵙고 싶어 이러 저리 수소문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가슴 아픈 소식만 전해져 왔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그 당시 선생님 등에 기대어 잠들던 꼬맹이 시절 생각에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슬그머니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박현숙 교직원 홍보기자
적정나이가 되면 으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반 아이들 중에는 몸집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뒤뚱거리며 다니던 예닐곱 살 친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 역시 한 살 많은 동네 친구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가버리자 엄마를 졸라 1학년 2학기가 시작될무렵에 뒷문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밤낮으로 보채는 통에부모님도 ‘며칠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후 학교를 보냈단다. 남들보다몇 달 늦게 입학한 기자는 학교생활이 정말 재미있었다.
며칠 동안 잘 따라다녔고, 생애 처음으로 시험도치렀다. “첫 시험에 만점을 받으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 후 기자의 초등학교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또래보다 약하고 체구가 작았던 탓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결국 학교에 다닌 지 몇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교육열이 강했던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교문까지 책가방을 들어주며 엄한 얼굴로 학교에 보냈는데, 그 때 만났던 인자하신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연필 쥐는 방법부터 글씨 쓰는 방법까지 모든 걸어깨너머로 배워서 흉내만 냈던 기자에게 선생님은 옆자리에 책상까지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올바르게 연필을 쥐는 방법부터 한글의 획을 긋는 순서까지 매일 세심하게 알려주셨던 천사표 선생님. 당시엔 올바른 연필 쥐기와 바른 글씨쓰기는 1학년 학생들 사이에 커다란 숙제이자 고통이었다.
받아쓰기 시험이 시작되더라도 선생님은 옆에 서서 연필 쥐는 방법과 글씨 쓰는 방법을 계속해서 수정해 주셨다. 덕분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반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어린이, 가장 자세가좋은 학생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또 몸이 아파서 자주 엎드려 있었는데, 그 때마다마치 엄마처럼 업어주셨던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많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그 때만큼 인자하고 자상했던 분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처럼, 때론 언니처럼 다정다감했던 친구 같은선생님. 성인이 되어 한번쯤 찾아뵙고 싶어 이러 저리 수소문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가슴 아픈 소식만 전해져 왔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그 당시 선생님 등에 기대어 잠들던 꼬맹이 시절 생각에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슬그머니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박현숙 교직원 홍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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