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농, 산, 어촌 교육의 중요성 - 세심한 배려되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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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고향에 와 살겠다고 바로 이웃으로 옛 자기집 헌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 살고 있는 한 분이 있습니다. 입담이 워낙 좋은 분이라 이분이 입만 떼면 우리는 늘 배를 잡고 웃습니다.
어제는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뒷산 산책길의 굽은 소나무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아들은 외국 대학 교수로 있고 딸은 병원 의사로 있는데, 정작 자기 어머니는 이곳 시골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중에 한 명 정도는 시골에서 내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내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두 마리만큼 값지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누구야? 하수도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누구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죽은 박사보다 살이있는 멍청이가 낫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병원에 있는 딸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추워져서야 소나무·잣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글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입니다.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립니다.
또한 괴이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합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스럽게 지켜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없신여기는 경향들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못난 소나무이면서, 너는 나를 우습게 알고, 나는 너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러했듯이요.
서로 힐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입니다. 우리 자식들 대부분도 가난하여 진학도 못하고 먼 타향으로 취업도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난 소나무가 우리에게 효도하고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농촌, 어촌, 산촌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소중한 효도와 이 땅을 지켜갈 주인공들이니까요.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게 될 환경이 열악한 소나무들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소외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식이 잘되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하더라도 구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놈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못난 소나무가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최유선/前 함평여고 교장
어제는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뒷산 산책길의 굽은 소나무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아들은 외국 대학 교수로 있고 딸은 병원 의사로 있는데, 정작 자기 어머니는 이곳 시골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중에 한 명 정도는 시골에서 내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내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두 마리만큼 값지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누구야? 하수도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누구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죽은 박사보다 살이있는 멍청이가 낫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병원에 있는 딸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추워져서야 소나무·잣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글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입니다.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립니다.
또한 괴이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합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스럽게 지켜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없신여기는 경향들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못난 소나무이면서, 너는 나를 우습게 알고, 나는 너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러했듯이요.
서로 힐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입니다. 우리 자식들 대부분도 가난하여 진학도 못하고 먼 타향으로 취업도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난 소나무가 우리에게 효도하고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농촌, 어촌, 산촌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소중한 효도와 이 땅을 지켜갈 주인공들이니까요.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게 될 환경이 열악한 소나무들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소외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식이 잘되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하더라도 구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놈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못난 소나무가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최유선/前 함평여고 교장
